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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왕이 왜백제임나신라 왕을 중국에 책봉요청했고, 당시 중국에서 왜임라신라왕으로 책봉한 사서들이 많습니다. 실제 임나일본부는 지배기관으로서 실존했고, 광개토대왕비처럼 왜가 바다를 건너 백제와 임라 신라를 신민으로 삼았다는 구절이 맞아떨어지기 때문에, 한반도 남부는 당시 일본 지배하에 있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특히 최근 영산강 유역과 해남 일대에서 일본의 전방후원분이 다수 발견되는 것으로 봐선 일본이 진출한 유물까지 나오는 실정입니다.
Ответить이영식 교수가 임나일본부설을 비판하는듯 하면서도, 한국사 애기 하는데, 일본서기를 중심으로 아야기하고, 삼국사와 삼국유사에 초기 기록 불신하고, 유사도 자기네가 필요한 부분만 인용하고, 불리한거는 인용하지 않아요.
그리고 전라도에 남원 기문국, 장수 반파국,해남 침미다례, 합천 다라국 외에도 우리나라 국명
아닌걸 사용합니다. 우리국명 아닌 다른걸 들으면 의심해야 합니다. 또한 안라국,다라국 모두 고구리(고구려)계열이니, 호태왕께서 안라인에게 수병 맡긴거고,
일본 극우파 학자들이 말하는 임나4현 과 임나10국 은 모두 대마도와 큐슈 자역에 산재해있고, 광개토호태왕께서 임나10국 연정을 세워서 안라인에게 대리하게 해서 간접적으로 지배했다는걸
현재 강단학조들은 숨기고 있어요. 강단학자 말만 밑지 말고 직접찾고 검색하고
비교해서 팩트 체크 해야 합니다.
Prof. Lee Young-sik seems to criticize Imna Japan's editorial, but he talks about Korean history. He/she mistrusts the early records of Samguk History and Samguk Yusa, cites only the parts that they need, and does not cite any disadvantages. In addition to Namwon's Gyimungguk, Jangsu's Banpaguk, Haenam's Chimmyarye, and Hapcheon Dara-guk, he/she uses non-Korean names in Jeolla-do. You should be suspicious if you hear anything other than our Korean name. Also, since Anra and Dara-guk are both Goguryo-ri (Goguryo) affiliates, King Ho-tae left them with An-line, and what Japanese far-right scholars call Imna 4 prefectures and Imna 10 countries are scattered in the Tsushima and Kyushu areas, and King Gwanggaeto Ho-tae indirectly ruled by establishing an alliance of Imna 10 countries to An-line. Kang Dan-hak scholars should not be the only ones who speak, but should search, compare, and fact-check them.
일본은 백제와가야는 어버님의 나라인디 두번이나 칼을 품어 저희는 도저희 용서을 못할족속이다
Ответить다 신민사학자와 일본이 꾸민일이다
속지말길
일본이 한반도 남부지배는 사실입니다. 2백년일지라도요 우리도 중국일부를 지배한적도 있잖아요
Ответить이미 완전체에 -어떻게 더할 수가 있음까?
이미 '전부'인데 더 커질 수 있을까 -
끝까지 왔는데 더 갈 수 있을까?
오, 향유라는 하사금!
이런 글이 떠오릅니다
대한민국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일본제국주의 친일파와 대한민국 내에 있는 신친일파를 단죄하고 추방해야 합니다
Ответить상식적으로 말이 안되지
발해.고구려.백제.신라.가야가 고대 시대에 거의 무적 이었는데
일본한테도 농작 기술.철기 기술 등등을 전파해 주고 일본 이라는 나라를 발전 시키는데 큰 영향을 줬음
역사 조작 날조. 하면 세계적으로 ㅣ등이 중공이나 일본 둘중 하나 일듯 ㅡㅡ 이것은 우주 외계인 들도 인정 할듯 ㅡㅡ 흐흨. ㅡㅡ
Ответить3.~4세기는 倭는 있었어도 日이나 日本이라는 용어을 쓰지 않았는데 어떻게 임나일본부라는 것이 있을 수 있는가? 그리고 광개토대왕비문에 '왜가 백제,가야,신라를 파해 왜의 신민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진실 여부를 떠나)'을 기록한다는 것은 도저히 상상불능이다. 자기 조상 비문에 적 조상 업적을 적었다? 웃기는 얘기다.
Ответить일본이 백제였고
한반도가 백제였음
세계제일 판타지 일본역사. 임나일본부 말만 들어도 역겹다. 고무줄일본역사 내가 다 수치스럽다
Ответить최근 한국에서 일본이 오리지널의 고분이 몇 개나 발견되고 있습니다.
일본의 고분 쪽이 훨씬 오래되었기 때문에 일본의 고분이 오리지날입니다.
만일 이것이 반대였을 경우, 한국 정부는 지금의 100배는 기뻐했을 것입니다.
조선 땅에 훔쳐간 거 돌려줘유☯️☸️✡️
Ответить지금도 상놈들이 출세하면 족보를 바꿉니다.일본놈들이 상놈.상놈은 출세하면 안됍니까? 사실대로 산다고 뭐가 힘듭니까?명나라 주원장도 개상놈 출신입니다.,그래도 조선 사대부들이 머리를 조아렸습니다. 징기스칸도 마찬가집니다.
Ответить요즘은 수 많은 문헌과 유물이 있기 때문에 임나일본부설 주장 할수록 일본만 민망할뿐
우리가 나서서 반박 할 필요도 없음
가야가 일본에 분국만들고 그 다음 백제가 가야와 야마토 왜 정벌 하여 통합했음.
그래서 백제 가야 왜가 신라를 함께 침략한 이유 설명 할수 있음.
백제도 사실 고구려 & 부여에서 떨어져 나온 분국이고
가야도 기마민족이 남하하여 세운 분국임.
기마민족은 세력이 떨어져 나오면 나라를 세우는 특징이 있는 민족임.
중국 동남해안가 옹관묘세력인 오나라/월나라(월남=베트남과도 동족) 왜족이 전란을 피해서...전라남도 영산강유역과 일본 규슈로 이주. 이들 세력이 옹관묘 거쳐서 3세기중반~6세기중반까지 일본에서 왜식 전방후원분 2000기 만듬. 왜왕가는 좀더 안전한 일본에 있고 전라남도도 왜족의 영토. 전라남도 옹관묘 왜족은 광개토대왕한테 학살당하고 일본 규슈로 도망. 세력만회를 위해서 5세기말~6세기초 왜족 일부 지배층(=왕족)이 전라남도 영산강 유역에 파견되어 전방후원분 만듬. 현재 광주, 나주, 해남, 함평, 무안, 영암등 전라남도 요지에서 17기 발견. 신라를 괴롭히다가 신라 진흥왕때 또 박살나고 일부는 전라남도에 남고 일부는 일본규슈로 또 도망. 전세계에서 전라남도와 일본규슈에서만 나오는 cis-AB형 혈액형이 증명. 현재 전라남도 요지에서만 쏟아지는 옹관묘와 전방후원분(=왜식 무덤)의 유물과 유골의 유전자가 현대 일본인(=규슈)과 100%일치. 전라도 = 토착왜구. 신라건국시기부터 지금까지도 2000년간 사사건건 한국인과 대립, 갈등, 분란, 폭동, 내란 일으키는 과학적 근거./ 한국인과는 다른민족이고 주적관계 / 참고로.. 전라도지역에서는 옹관묘, 전방후원분만 쏟아지고... 신라지역엔 부여, 흉노유물만 쏟아짐 / 고대 고인돌세력은 이들한테 멸종이나 흡수됨
Ответить고대 쌀농사 개발한 중국땅의 묘족(양쯔강 지류 한수=한나라, 한강의 기원) = 중국 동남해안가 오나라, 월나라 왜족(=왜의 한자부수에 있는 쌀) = 전라도 쌀농사 농경 해양종족 = 일본 왜족 = 베트남족 VS 황제헌원(현대중국인 조상이라는건 사기. 100%동이족)-소호금천(김씨조상. 100%동이족)-흉노부여-신라김씨박씨석씨 = 유목 기마민족
Ответить사료가 있고,
유물 유적이 있고,
유전자까지 나왔고 시기도 일치한다면,
왜계세력이 분명히 한반도 남부에 존재 했다. 왜 정치적인 이유로, 역사적 사실까지 제대로 판단을 못하는거냐?
일본 왕실의 삼종신기가 거울 검 곡옥인 것을 보면 가야 백제계가 열도에 진출하기 이전에 이미 고조선의 문화를 가진 자들이 열도를 지배하였음을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이 사람들이 한반도에서 세력를 규합하여 열도로 건너간건지 아니면 열도에 건너가 세력을 만든 것인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전자일 것 같습니다. 준왕세력이나 아니면 한나라에 패한 우거왕 세력이든지 삼한의 맹주로 세력을 모으고 있다가 어느 시기에 그 세력이 열도로 넘어간 것 같습니다. 그 시기도 아마 초기 백제나 신라 이후 아닐까 생각합니다. 백제에게 한수 부근의 땅에 머물게 하고, 고조선의 유민을 받아들여 경주지역에 사로육촌을 건설하게 하였지만 초기에 진한의 왕은 마한에서 임명한 자로 삼았다 하니 그렇게 한 세력이 있었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Ответить과거 일본이 주장했으나 지금은 일본학계도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정한 역사 기술. 일본이라는 국호는 7세기 이후 등장한 단어. 이진희 선생의 조작론도 지금은 받아들여지지 않음. 그러나 임나일본부는 포기했어도 이직도 많은 일본인들이 믿고 있는 것은 '신공왕후 삼한 정벌론'
Ответить상식적으로 치적을 알리는데 일본놈들말을 그렇게 쓰겠냐?
하여간 왜 구 라고 하는 이유가 있다니까
돌에 새긴 비문을 어떻게 조작했다는 건지요? 수백년 전 탁본도 중국 박물관에서 발견되었습니다. 그대로 입니다. 역사 왜곡하면 안 됩니다. 아프니까 역사입니다. 아프고 굴욕적일 수록 똑바로 쳐다봐야 역사적 교훈과 미래를 얻을 수 있습니다. 역사 윤색하는 세력들이 진정한 민족 반역자들입니다. kbs는 국민들 평균 눈높이도 안 되는 이상한 드라마 같은 역사 다큐 중단하라. 국민들은 역사적 사실을 원한다. 그리고 거기서 미래를 보길 원한다.
Ответить100%까지는 미덥지 않으나, 전라남도 지역에 왜구집결지나 정착촌은 있었다고 봄..!!
Ответить인정할 건 인정하는 역사적 용단이 필요함...
Ответить왜는 본디 수나라에서 나왔다.
수나라에서 나온 왜는 오나라에 이어 중국 동남부로 밀려나 일종의 해적집단이 되었다. 이 왜는 필리핀 대만 스리랑카 인도네시아 등에 퍼져 살면서 점차 일본까지 연결되는 고리섬들을 통해 일본까지 진출한다.
수나라부터 일본국 건국 때까지 왜는 백제나 신라 편에도 붙었는데 다들 알다시피 백제나 신라 모두 대륙에도 있었고 한반도에도 있었다.
결론: 왜는 일본 건국 이전까지 나라 없이 백제와 신라(특히 백제)를 위해 일하던 조력자 였다. 어쩜 나쁜 의미로 조폭 역할까지 했을 가능성이 있다. 왜냐하면 우리의 사서 여러 곳에 왜구의 침략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아깝다 우리땅 ㅠ
Ответить일본 서기도. 완전 허구 왜곡 엉터리 던데
일본 국만성만 봐도 안봐도 비디오지
임나일본부도 그 역사성이 증명되기만 하면 사실일 수도 있다. 굳이 아니라고 악을 쓸 필요가 없다.
독도가 우리 땅이라고 악만 쓸 것이 아니라 일본땅이 된 식민지 조선땅을 미국이 반환을 받아 미국이 반환받은 조선땅을 한국에 돌려 주었다. 그런데 미국이 일본으로 부터 반환받은 조선땅에는 독도가 빠져 있다. 따라서 독도가 일본에서 마국으로 미국에서 한국으로 반환된 적이 없다는 사실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19이 되어야 임나일본부라는 강의를 들었다. 그것도 시간 강사 교수에게. 역사 ? 강의에 교재는 전혀하지 않고 한학기 이 강의만 쭉~ 해주셨다. 너무 감사한 쌤 ^^
Ответить일본은 왜? 역사를 조작하는걸 좋아하나?
Ответить아니 나는 임나일본부랑 다이센릉 고분이랑... 뭔가 역설적인 연관이 있다고 생각함... 즉, 우리 민족 가야? 혹은 백제가 일본 본토 오사카까지 먹은거지.. 그러니까 오사카 다이센릉 고분에 백제, 가야 유물이 나오고... 일본은 아직까지 일반인, 심지어 고고학자도 다이센릉 고분에 아무도 못 들어가게 막아둔거지.
Ответить왜놈들의 고구려 장수왕이 아버지
광개토태왕의 역사기록을 새겨서
중국 집안에 거대비문을 세윘다.
그러나 현세에도 왜놈들은 거짓역
사를 만들기 위해 비문일부를 조작
한 흔적으로 탁본비교로 밝혀졌다.
일본의 역사왜곡을 이야기 하는 인간이 유인촌 왜놈의힘당 지원하는 땡땡(욕설)이니 시옷비읍 열뻣쳐서!! 못듣겠네
Ответить이런걸 두고 자승자박이라고 하는거지.
거짓역사 조작하려다가 오히려 그당시 일본의 미개한 실상만 더 확인시켜준 꼴이니.
정통 식민학자들은 다 등장하는군 임나일본부를 부정하는척하면서 결과는 가야가 임나라고 주장 ㅎㅎㅎ
Ответить가야뿐만 아니라 가야 이전에 한반도 문명들이 일본에 영향 준거 같음. 옥저 동예같은 나라도 있지 않았나? 야마토라는 문명에는 가야문명이 크게 영향을 끼치고 일본은 백제가 기존 가야세력이랑 통합해서 일본으로 국호를 바꾼듯.
Ответить임나는 倭열도 죽사국 以西 지역에 위치
● 임나는 야마토왜를 기준으로 축자국을 지나 2천여리
일본서기
(숭신 65년) B.C.33년 7월
"六十五年 秋七月, 任那國遣蘇那曷叱知, 令朝貢也. 任那者去筑紫國, 二千餘里. 北阻海以在鷄林之西南."
"임나국이 소나갈질지를 보내 조공하였다. 임나는 축자국(竹斯國죽사국)을 지나서(가서) 2천여리에 있으며, 북쪽으로 바다에 막혔고 계림의 서남쪽에 있다."
△ 원문에서 이 문장 "... 任那者去筑紫國..." 중 이 "去"라는 字는 "가다" "지나다" 로 해석이 되어지며, 야마토왜가 있었던 열도 기내지역 나라현을 기준으로 하여 서쪽으로 가면 축자국(竹斯國죽사국)에 다다릅니다.
△ 去字를 "~에서, ~로부터" 로 해석을 하는 분들도 있는데
"去筑紫國"의 문구만 놓고 봤을 때
△ 이 去를 "거기 가서 부터"로 보면 그렇게 해석해도 무방합니다. 그렇게 사용한 용례도 물론 있습니다.
그러나 去라는 말은 "가다" "가서" "가는" "지나가다" "지나다" "지나서" 등 우리말로 이런 식으로 해석이 되는데 이 去字는 방향성이 있는 말입니다.
이것은 축자국으로의 방향을 말하는 것으로 보는 게 적절할 것입니다.
△ 이 去字의 해석은 後漢書 倭의 문장이 쓰여진 예를 보면
『後漢書』「倭」
其大倭王居邪馬臺國. 樂浪郡徼, [去]其國萬二千里, [去]其西
北界拘邪韓國七千餘里.
"... 낙랑군에서 출발하여 그 나라에 [去;가서, 지나서] 만2천리이며, 그 서북계 구야한국에 [去;가서, 지나서] 7천여리이다."
"[去]其國..." 그 나라까지가 만2천리라는 것이며
"[去]其西北界狗邪韓國..." 구야한국까지가 7천여리이다.
△ "去筑紫國, 二千餘里; 축자국을 가서(지나서) 2천여리"로 해석되어지며 이것은 일본서기 편찬자는 당연히 천황이 있는 야마토왜를 기준으로 말하는 것이고
"열도 기내지역에서 축자국 방향으로 2천여리 가서(지나서)" 를 말하는 것이며, 즉 2천리 남짓을 말하는 것이며, 이것은 축자국을 지나면 임나가 있다는 것이며, 임나와 축자국이 그만큼 가깝게 있다는 뜻입니다.
● 야마토왜에서 서쪽으로 2천여리는 北九州
『三國志魏志東夷』「倭傳」
從郡至倭, 循海岸水行, 歷韓國 乍南乍東, 到其北岸狗邪韓國 七千餘里.
始度一海, 千餘里至對馬國, 又南渡一海千餘里, ...至一大國, ...又渡一海, ...千餘里至末盧國,
『後漢書』「倭」
其大倭王居邪馬臺國. 樂浪郡徼, 去其國萬二千里, 去其西北界拘邪韓國七千餘里.
△ 후한서와 삼국지위지동이에 나오는 야마토왜로 가는 길의 거리를 고대 요동 낙랑군에서 1만 2천리라고 합니다.
△ 그 경로에 부산·김해 지역을 7천리라고 하였고 3천리의 바다를 건너서 열도 北九州 末盧國말로국에 도착하여 1만리가 되며
△ 그곳 末盧國말로국에서 2천여리를 더 가면 야마토왜에 도착하여 도합 1만 2천리입니다.
△ 그러므로 야마토왜에서 서쪽 축자국 방향으로 2천여리에 있는 그곳이 임나이며, 낙랑군으로부터 1만리가 되는 열도 北九州 지역이 임나가 있는 지역입니다.
● 위지동이에 등장하는 임나4현 중 하나 "모루"
始度一海, 千餘里至對馬國, 又南渡一海千餘里, ...至一大國, ...又渡一海, ...千餘里至末盧國,
대한해협 3천리를 건너 다다른 곳이 末盧國말로국 (末盧의 중국어 표준음; 모루)입니다.
말로국(모루縣)이 있는 그곳이 야마토왜를 기준 서쪽으로 2천여리 축자국을 지나서 있는 北九州에 위치한 임나입니다. 임나와 관련된 모든 나라는 구주지역과 대마도 이끼섬에 위치한 것이 명확합니다.
● 죽사국 以東이 야마토왜에 부용, 그 以西는 임나
『隨書』「倭國」; 608년 본문 中
"自竹斯國以東, 皆附庸於倭."
일본서기 원문 中
"... 任那者去筑紫國, 二千餘里."
위 두 기록을 토대로
△ 야마토왜를 기준 서쪽으로 竹斯國죽사국(축자국)을 지나 그 以西 2천리에 임나가 있습니다.
△ 隋書 倭國에 "竹斯國죽사국(축자국) 以東이 야마토왜에 부용한다" 는 기록에서 알 수 있듯이 그 以西 지역에 임나가 있습니다.
△ 야마토왜를 기준 서쪽으로 축자국(竹斯國죽사국)을 지나 2천리, 즉 축자국 以西 지역을 임나라 하는 것이며, 고대의 요동에 위치한 낙랑군에서 출발하여 연안 물길을 따라 부산·김해 구야한국에 이르러 7천리, 이어 대한해협 3천리를 건너 열도 九州에 도착하여 1만리되는 그 곳이 임나입니다.
● "北阻海" 임나는 북쪽이 바다로 막혀 있어
일본서기 본문 中
"北阻海以在鷄林之西南."
"북쪽으로 바다에 막혔고 계림의 서남쪽에 있다."
△ 그 말인즉슨 '계림'이 있는 그 북쪽으로,
△ 대륙으로 갈 수 있는 그 북쪽으로,
△ 결정적으로 임나의 위치는 일본서기의 기록상 '임나'는 그 북쪽이 바다로 막혔습니다. 열도 北九州에서 북쪽 계림으로 대륙으로 갈 수 있는 그 길이 바다로 막혀 있습니다.
△ 이 기록에서 말하는 임나는 죽사국 以西 지역을 말하는 것으로 이곳은 후한서와 위지동이, 隋書, 일본서기의 기록을 종합하여 본 결과 열도 구주지역을 임나로 보고 있는 것이 명확합니다.
△ 열도 九州 축자국(竹斯國죽사국) 以西 지역이 임나입니다.
비석을 훼손시켜서 글자를 바꿔버렸네.
가야 역사는 중국에서 멸족당한 흉노 김씨가 한반도 남동부로 이주. 김수로가 가야를 세우고 인도 허왕조 멸망후 이주세력인 허씨등 과 연합세력을 형성, 본격적인 중국 철기와 인도 철기의 융합 철기 스킬 도입, 철기문화를 꽃피움. 이후 김해의 금관가야가 함안의 대가야로 정권이 넘어감? 금관가야의 김씨들이 신라 경주 김씨들과 연합, 결국 대가야도 멸망. 이후 대가야는 왜로 피난! 피난간 대가야인들은 일본인이 되는거고, 일본으로 피난 못간 남은 대가야인들은 신라의 노예가 되는거고, 금관가야인들 신라에 흡수. 현대에 대구(밀양, 경주), 경북은 TK, 부산(함안, 창원, 김해), 경남은 PK.ㅋㅋ
일본인들이된 대가야인들인 기회가 오면 가야를 되찾아와야 하는 땅으로 인식. 왜구의 약탈행위 정당화?
임라일본부설은 일본에 살고 있는 가야의 후손들이 조상땅을 되찾고 싶은 마음. 조상들(대가야인)이 잃은 땅읗 되찾고 싶은 마음에서 조작으로 나온거야.ㅋㅋ
가야 = 왜
Ответить고구려도 지금 중국 본토다 점령했다.
Ответить중국,일본 조작의 역사
Ответить일본도 그런데 중국은 고구려가 지들 역사라고 하잖아ㅋㅋㅋㅋㅋㅋㅋ
Ответить